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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실험 072
신예슬

< 다시 호출되는 표면: 회화 표본실 >

2026.07.17 - 07.30
13:00 - 19:00



뒷공간의 시간, 펼쳐진 시선

무대에 오르기 전의 시간을 생각해 본다. 먼저, 배우가 대기 중이다. 그리고 배우 옆에 도구들이 있다. 배경을 장식하거나, 극 중에 등장하거나, 혹은 무대를 받쳐주는 것들—조명을 덜 받은 이곳으로부터 무대를 향해 시선을 보내는 이들. 관객석과 무대 뒷공간은 어둠으로 연결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무대 막이 오르기 전의 공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은 물건처럼 있고, 출연을 기다리던 이들은 주목받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올 시간을 향해 준비된 여러 자세가 여기에 있다. 그와 동시에, 나에게 다가온 시간을 간직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신예슬의 회화에 흐르는 시간은 뒤에 물러서 있는 것들의 시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뒷공간이다. 연극 무대에 대한 비유—예컨대, 꼭두각시를 닮은 형상—에 그치지 않고, 그의 회화는 무대막 옆이나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거나 서성거리는 배우와 도구들이 배치된 곳이다. 이곳은 뒷공간이다. 우연적인 만남은 뒷공간 안에서뿐만 아니라 형상과 형상 사이(예컨대, 강아지와 식물, 인간 형상을 오가는)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정렬과 혼잡함이 담긴 곳은 우리의 시선에 노출되고 포착되면서 긴장한다. 그와 동시에 열린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들은 무엇을 기다릴까—읽히는 시선을 제공했다가 다시 받는다. 유추와 착시가 반복할 때, 신예슬이 화면에 담는 이미지는 멈춰 있는 상태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개인전 제목 ⟪다시 호출되는 표면: 회화 표본실⟫처럼, 신예슬은 ‘표본’이라는 말로 회화를 설명한다. 작품을 보니, 좌우대칭적 구도로 그려진 대상은 곤충 표본을 시각적으로 연상케 한다. 죽어 있지만 살아 있을 때보다 세세하게 보이게 되는 부분들이 우리 눈에 노출된다.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펼쳐지고, 펼쳐짐으로써 보이게 된다. 대상이 시침핀으로 고정된 상태로 신예슬의 회화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랍에 보관되던 표본이 밖으로, 시선 아래 꺼내어지는 것처럼, 과거의 유물은 부피가 없고 작은 실체에 주시하는 시선을 제공해 준다. 작가가 말하는 ‘표본’이란 수집과 분류의 대상뿐만 아니라 보관을 가리키기도 한다. 보관하는 곳은 종종 어둡거나 진열장처럼 은밀하게 관리되고 때때로 공개된다. 쌓여 있는 시간들이 분류와 미분류를 반복하면서 축적된 형태가 소장(collection)이다. 움직임은 없지만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들이 있는데, 꺼내어지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일종의 신비로움이 형상과 형상 사이에서 소환되어 기록된다.

신예슬의 회화에 나타나는 구도는 좌우대칭적인 중심축에 서 있는 듯하다가도 서서히 벗어난다. 정면을 보지 않고 옆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은 또 다른 장소를 바라보고 있다. 이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의 긴장한 모습이자 창고에 들어가 있는, 보관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러다가 지금 이곳(화면)이 아닌 곳으로 튀어나오려고 한다. 마치 커튼 옆에서 대기하는 듯이, 이곳에서 대상은 도구 미만인 동시에 주인공 미만이다. 이런 상태는 부정적이기만 하지 않다—역할에 구속되지 않고 어떤 역할로도 거듭날 수 있다. 그리하여 관람객 앞에 나타날 때, 그들에 의해 서사가 펼쳐지게 된다. 신예슬의 회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정적이다. 그들의 다리나 날개는 정지된 듯이 보인다. 영혼은 없지만 살아있음을 연출하기—‘표본’보다는 ‘박제’가 표현상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제가 어떤 약동감을 입체적으로 담는다면, 신예슬의 회화는 억제된 인상이 더 강하다. 마치 다음 장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알고 있어도 긴장에 차 있는 꼭두각시처럼 서 있다. 움직임이 멈춘 이 상태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회화에 움직임을 본다면, 그것은 우리가 ‘엿본’ 것이다. 우리가 이들의 순간을 붙잡을 때, 그 순간은 내 눈으로 포착한 결과이다.

당신이 표본을 꺼내어 볼 때, 그 시간은 다시, 그러나 또 다르게 흐른다. 떠나지 않았던 이미지가 제자리를 잠시 벗어나 다른 시선을 받아들인다. 그때 우리의 시선은, 작가의 시선은, 그리고 그려진 대상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열린다. 그것은 설정된 배경이나 서사에서 벗어난 채 남고 그들에게 더 자유로운 날갯짓을 허용해 준다. 극장의 장막이 오르기 전, 관객석과 무대 뒤에서 맴도는 침묵과 긴장이 신예슬의 회화에서는 담겼다가 다시 흐르게 된다. 표본처럼 어스름 속 에 보관되어 머물러 있다가 이미지는 서서히 움직인다. 역동적으로 움직임이 담긴, 살아 있는 듯한 박제의 모습 대신 잠시 고정된 표본의 시간을 떠올린다. 얇고 연약한 대상을 시침핀으로 잠깐 꽂아둔 그 시간. 세부를 엿보고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들은 이들이 살아 있던 때보다 훨씬 미세하고 순간적이다. 이 미세함은 중심축과 나열에서 보였다가 흐르기 시작한다. 시간이 껍데기로만 남고 아무리 속이 비어 있다고 해도, 표면에 감각은 깃들지 않을까. 우리가 펼쳐두고 싶었던 시간들은 소장하고 간직하고 싶었던 시간들이 아닐까. 소환된 이미지는 어떤 맥락이나 배경에 근거를 두는 대신, 뒷공간에 해방의 움직임을 담는다. 이미지가 소환될 때, 그 이미지는 깊이감이나 무게감이 부재한 것이 아니라 다시 보고 내가 다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수행성을 가져다준다.

글 | 콘노 유키(@k40_herm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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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명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