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CE ZONE〉은 산책이라는 일상적 행위와 조건부로 작용하는 데이터 기반의 게임 환경 시스템 개념으로부터 확장하여 현실 공간을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공간 아카이브 프로젝트이다. 서로 다른 국가에 거주 중인 곽한비와 박선미 작가(이하 ‘무터와 움’)는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2년 1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변을 산책하면서 발견한 오브젝트를 채집하고 오브젝트가 사회에 얽혀 있는 방식을 추적한 내용을 편지와 공용 플랫폼을 통해 공유해오고 있다.
무터와 움은 플레이어로서 먼저 주변을 산책하는 중에 마주친 오브젝트를 물리적이거나 비물리적인 방식으로 땅으로부터 뜯어낸다. 이후에 각자가 오브젝트의 구조를 점차 포위해 나가는 섬세한 관찰과 해석 과정을 거치고 함께 이야기 나눈다. 구조 깊숙이 침투하는 이들의 조밀한 대화는 오브젝트를 풀어헤치고, 말랑말랑해진 표면 위로 서사가 접붙으며 새로운 환경에서 뿌리내릴 오브젝트로서 강화된다. 가상의 채집물 주머니(인벤토리)는 사방으로 여백을 증식하며 새로운 형태를 부여받은 채집물을 차곡차곡 담아낸다.
무터와 움은 반복되는 서사에 우회로를 내는 방법을 게임산업에서 게임 환경을 관리하는 전략 중 하나인 ‘인스턴스 존’ 개념에서 착안한다. 인스턴스 존은 월드맵 밖에 있다가 특정 지역에 유저가 몰릴 경우 트래픽을 감소시키고 자원을 원활히 분배하기 위해 월드맵 위로 레이어드 하는 보이지 않는 임시 환경이다. 이로써 유저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다양한 서사의 동기가 될 오브제가 넉넉한 채집 환경 속에서 고유의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터와 움은 이제 자신들만의 채집물을 가공하여 만든 인벤토리 혹은 채집물 주머니를 들고 무기를 든 영웅 서사가 혈관처럼 뻗어져 있는 일상이라는 월드맵을 다시 파밍 하기 위해 나선다.
파고 덫을 놓는 식이 아니라, 매일같이 길을 밟아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틔울 수 있는 땅으로 다진다. 다져진 땅에는 새로운 것들이 뿌리내리고, 굴러들어 온다. 무터와 움이 전시장이라는 현실 공간에 촘촘한 좌표 그물을 내려 만들어낸 임시 풍경엔 사방에 플레이어들과 접촉할 돌기를 품은 채집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