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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실험 041
< 새까만 눈이라도 빛내는 새처럼 >
민효경
2022년 11월 28일 ~ 12월 10일


어제
새의 움직임을 관찰하다 보면 그들이 매일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높은 기둥 위 어설프게 뭉개 앉아서는 까딱임도 잊은 채 공중을 응시한다거나,
비행하는 법을 모르는 듯 오른발을 들어 아스팔트를 따라 걷다가도 
왼발로 멈춰서길 반복하곤 해서
아주 높고 아주 낮은 그들의 시야에는 익숙해질 수 없는 
우주가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닐까, 자주 생각했다.
익숙해질 수 없는 것과 그래서 매일같이 씻은 눈이 되는 일. 
나 또한 그런 미시감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붓을 쥔 손이 자주 낯설게 느껴지는 탓에 어제까진 견고했던 밑그림 위로 
오늘은 삐걱삐걱 탈선하는 날이 잦아졌고,
그런 이유로 누군가 내게 진심이 없다고 한들, 
일목요연함을 견지하는 일이란 거짓을 세세히 
그리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쩌면 어제와 오늘, 내일이라는 세 명의 사람이 
내 그림을 상대로 릴레이 중이거나 삼자대면 중인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어찌 되었든 나는 매일 그림 앞에서 첫걸음을 떼고 있었고, 
이곳이 익숙해질 수 없는 우주인 것은 분명했다.

 
오늘
덩그러니 놓인 그림 앞에 서서 
깜깜한 미래보단 어제 남긴 몸짓을 읽기 시작했다.
가령 그어진 선과 색을 관찰해보는 것이다. 
내가 쥐던 힘과 온기, 진동, 리듬, 현실, 환상, 환멸.
관찰 끝에 바톤을 넘겨받으면 다시 현재의 몸짓을 
알맞은 자리에 알맞은 시각언어로 치환했다.
어제의 우울한 파랑 옆에 오늘은 말 많은 연두를 앉히는 일, 
오늘의 꽉 막힌 하늘 위로 
내일은 장난같은 별똥별을 그려주는 일.
감히 연약한 하루를 모아 우주를 이해해보려는 움직임으로 말이다.
정의할 수 없던 움직임으로 완성된 화면이 하나의 
무결한 원근법이라거나 연역이 될 순 없겠지만,
일기 같은 포개짐으로 얼마간의 진심은 귀납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일
코로나 이후, 익숙했던 길과 사람, 삶이 안절부절 대안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며 무력한 몸의 감각이 선명해졌다.
어제가 흔들리자 오늘의 심장이 쿵쾅거려 내일은 사라지고 싶었을 때, 그래서 내 작은 몸이 도미노처럼 
엎어져 미래까지 무너지리란 비보만 깜빡거릴 때,
나는 차라리 차곡차곡 절단되고자 했다. 
먼 시야의 축을 단지 오늘로, 입체를 쪼개 평면으로, 
원근을 끊어 레이어로, 연속을 끊어 점으로, 색으로.
그리고 다시 한번 이어 붙여 보는 것이다. 덩어리진 확실한 불행 앞에 
보이는 만큼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가볍게 연결한다.
그래도 그림은 완성되고 가끔은 우리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저기 새까만 눈이라도 빛내는 새처럼 말이다.

-작가노트중- 


3년 전 찾아온 묵직한 불행이 한 시대로 자리 잡아가는 사이, 
온 세계가 흔들렸고 
누군가의 일상은 무너졌으며 그들의 사연은 
언제든 손 닿는 거리의 실재가 되곤 했습니다.
 그처럼 내일을 기대하기 어렵던 날로부터 
제가 마주한 문제는 그림 속 물체를 향한 거부감과 답답함이었습니다.
소실점과 원근법, 일종의 수학적 논리를 토대로 정연히 존재하는 
물체들이 하루도 예상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괴리감. 
그럼에도 관성처럼 완전함을 좇으며 매 순간 
한계를 실감하는 현실. 그 앞에서 저는 작고 연약한 것, 
즉 하루라는 단위로 지어진 존재의 불확실성을 되짚어보았고,
 ‘연약함’ 그 자체의 의미를 긍정해보고자 
‘하루’를 ‘맥락 없는 낱개의 점과 선, 색과 면’으로 치환해 
오랜 기간 일기처럼, 삶처럼 중첩해나가는 현재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새까만 눈이라도 빛내는 새처럼》은 확실한 불행 앞에 실감한 삶의 불확실성, 
그로 인해 야기된 불안을 극복해간 과정이 담긴 전시입니다. 
그 청사진이 없는 과정엔 이미 그은 선을 후회한 날도 있었지만 
서툰 선에 애틋함을 가진 날도 있었고, 
마구 칠한 색에서 다시 볼 수 없을 우연을 만나는가 하면 생각지 못한 
가능성에 설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처럼 깜깜한 미래 앞에 연약함으로 연대한 작업은 보란 듯 오롯한 모습으로 오늘 이 공간을 채웠고, 
그렇듯 어제가 기쁘지 않다고 해서 오늘이 기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습니다.